조선 왕실백자의 산실 광주, 14차 발굴조사 성과로 5개 지역 가마와 잇다
한국도자재단·광주시, 지난 2일 경기도자미술관에서 조선 왕실백자 생산 중심지 광주의 14차 발굴조사 성과 공유
기조강연 1건·주제발표 5건·종합토론으로 충청·전북·전남·경상 지방요와 관요의 기술 교류 비교
사적 제314호 광주 조선백자 요지 발굴·연구 이어가며 조선 왕실백자의 역사적 가치 알린다
한국도자재단과 광주시는 지난 2일 경기도자미술관 1층 대강당에서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 연계 학술세미나 ‘조선 전기 관요와 지방백자’를 열었다. 세미나는 조선 전기 관요 설치를 전후한 지방 백자 생산의 변화와 지역별 특징, 관요와 지방요 사이의 기술 교류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선 왕실백자를 생산하던 경기도 광주의 위상을 전국 요업 지형 속에서 다시 살피는 자리였으며, 관련 전문가와 연구자, 도예인, 대학생 등 100여 명이 참여했다. 비엔날레 기간에 학술 프로그램을 더한 구성이다.
관요는 조선시대 왕실과 국가에서 필요한 백자를 생산하기 위해 운영한 가마를 말한다. 조선 왕실은 최상급 백자를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하기 위해 양질의 백토와 풍부한 땔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경기도 광주에 관요를 설치했다. 이번 세미나는 이렇게 출발한 조선 왕실백자의 생산 체계가 전국의 지방요와 어떻게 맞물렸는지를 학계가 한자리에서 논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중앙의 관요와 지방의 가마를 하나의 지도 위에 올려놓고 비교한 시도다.
조선 왕실백자 연구 현장 공유, 광주 조선백자 요지 14차 발굴조사의 하나로 마련
이번 세미나는 광주 조선백자 요지 14차 발굴조사 사업의 하나로 마련됐다. 그동안의 발굴·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조선 왕실백자의 생산 중심지였던 광주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재조명하는 것이 목적이다. 관요는 땔감 확보 등을 위해 일정한 주기로 생산지를 옮겨가며 운영됐고, 그 결과 현재 광주시 남종면·중부면·퇴촌면 등 광주 전역에 조선시대 백자 생산과 관련된 가마터와 유적이 다수 분포한다. 유적이 넓게 퍼져 있는 만큼 발굴조사도 차수를 거듭하며 이어지고 있다.
세미나는 기조강연과 주제발표, 종합토론,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기조강연 1건에 이어 주제발표 5건이 이어졌고, 종합토론에서는 여러 기관의 연구자가 ‘조선 전기 관요와 지방백자의 관계 및 향후 연구 방향’을 논의했다. 행사 구성만 보면 광주 한 지역의 발굴 보고에 머물지 않고 충청·전북·전남·경상 등 전국 요업 현황을 아우르도록 설계됐다. 전문가와 연구자뿐 아니라 도예인과 대학생, 일반인에게도 문을 열어 둔 점이 특징이다.
강인욱 기조강연에서 김경중 발표까지, 15세기 광주 분청사기가 조선 왕실백자로 넘어가는 길
기조강연은 중부고고학회장인 경희대학교 강인욱 교수가 맡았다. 강 교수는 ‘도자, 한국고고학의 시작과 미래’를 주제로 강연했다. 주제가 보여 주듯 도자를 한국 고고학의 출발점이자 미래 과제라는 큰 틀에서 다루는 순서로, 이어지는 지역별 주제발표에 앞서 도자 연구의 전체 맥락을 짚는 역할로 편성됐다. 조선 왕실백자 연구가 개별 유적 조사에 그치지 않고 고고학 전반의 흐름과 이어진다는 점을 환기하는 구성이다.
첫 주제발표는 경기도자박물관 김경중이 맡아 ‘조선 15세기 경기도 광주 분청사기의 제작과 특징’을 발표했다. 학계에서는 1467년 사옹원 분원이 설치된 이후 백자가 대량 생산되고 분청사기는 쇠퇴한 것으로 설명해 왔다. 이 발표는 조선 왕실백자 생산이 본격화하는 15세기 광주 요업의 한 축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후 지역별 발표와 비교하는 기준점이 됐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를 20여 년 조사해 온 기관의 연구자가 첫 발표를 맡았다.
충청·전북·전남·경상 4개 권역 발표자 4명, 관요 설치 전후 지방요의 달라진 풍경 비교
충북문화유산연구원 김태홍은 ‘관요 설치 전후 충청도지역의 자기 기형 변화’를, 고려대학교 안세진은 ‘조선 전기 전북지역 요업의 특징’을 각각 발표했다. 충청 발표는 관요 설치를 전후한 그릇 모양의 변화에, 전북 발표는 지역 요업의 특징에 무게를 뒀다. 발표 제목에 드러난 접근 방식을 보면 지방요를 관요의 부속이 아니라 독자적인 생산 단위로 살피는 데 초점이 있었고, 조선 왕실백자를 생산하는 관요의 설치를 기준선으로 삼아 그 전후를 비교한 점이 눈에 띈다.
민족문화유산연구원 김귀한은 ‘조선 전기 전남지역 백자요장과 관요의 상호관계’를, 국가유산청 김윤희는 ‘조선 15세기 경상도지역 백자의 전개양상’을 발표했다. 발표자들은 광주의 분청사기와 백자를 비롯해 충청·전북·전남·경상지역의 요업 현황을 비교하며 관요 설치 전후 지방요의 변화와 지역별 생산 특징, 관요와 지방요 사이의 기술적 교류 양상을 살폈다. 5건의 발표는 경기에서 영남과 호남까지 이어지며, 조선 왕실백자와 지방백자를 전국 단위로 비교하는 틀을 갖췄다.
전승창 아모레퍼시픽미술관장 좌장, 박경자·김재형·최명지 등 토론자가 논의한 조선 왕실백자 연구의 다음 과제
종합토론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장 전승창이 좌장을 맡았다. 국가유산청 박경자, 기남문화유산연구원 김재형, 국립중앙박물관 최명지,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원 성윤길, 경강문화유산연구원 박성희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발굴조사 기관과 박물관, 국가 기관 소속 연구자가 함께 ‘조선 전기 관요와 지방백자의 관계 및 향후 연구 방향’을 점검했다. 토론은 조선 왕실백자와 지방백자의 관계를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연구할지에 초점이 맞춰졌고, 현장 조사와 전시, 보존을 맡은 기관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후속 연구의 협력 기반을 보여 준다.
류인권 대표 “국가문화유산이 도민의 자긍심 되도록”, 조선 왕실백자 발굴·연구 사업 이어간다
류인권 한국도자재단 대표이사는 “앞으로도 왕실백자의 산실인 관요 유적의 소중한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보존·활용함으로써 국가문화유산이 경기도민의 자긍심이 될 수 있도록 광주시와 지속적으로 협업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도자재단과 광주시는 광주 조선백자 요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연구를 이어가고, 조선 왕실백자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유산의 의미를 알리며 연구 성과를 공유하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두 기관의 협업은 조선 왕실백자의 조사와 보존, 활용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데 맞춰져 있다.
1467년 사옹원 분원 설치, 약 10년 주기로 생산지 옮긴 조선 왕실백자의 이동 경로
광주에 분원이 설치된 것은 1467년으로 알려져 있다. 학계에서는 이해 4월 이후 분원 관요 시대에 들어서면서 백자가 대량 생산된 것으로 본다. 사옹원은 궁중의 먹을거리를 맡은 관청으로 궁궐에서 쓸 그릇을 만들어 공급하는 일도 맡았고, 그 그릇 제작소가 분원이다. 관요 설치 이전에는 전국 4곳의 상품자기소가 왕실과 관청용 자기를 공납했으나, 관요 설치 이후에는 사옹원 소속 사기장 380명이 제작했다는 설명이 있다. 조선 왕실백자의 생산 주체가 지방에서 중앙으로 옮겨 온 셈이다.
분원은 땔감을 찾아 광주 일대를 옮겨 다녔다. 백자를 구우려면 가마를 초고온으로 유지해야 해 땔감이 끝없이 들어갔고, 대략 10년 단위로 이동한 결과가 오늘날 광주에 수백 곳의 가마터가 남은 이유로 설명된다. 경기도자박물관 김경중의 연구는 1530년대 후반부터 1540년대 초까지 운영된 우산리 9호 가마 일원에서 시작해 무갑리, 번천리, 관음리, 곤지암리, 대쌍령리, 정지리 순으로 조선 왕실백자 생산지가 옮겨 간 경로를 추정했다.
연구가 제시한 운영 시기는 더 세분된다. 무갑리 14호 일원은 1540년대 중반부터 1551년까지, 번천리 9호 일원은 1552년부터 1558년까지, 관음리 10호 일원은 1559년부터 1560년대 후반까지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 곤지암리 1호 일원이 1570년 전후부터 1570년대 중반, 대쌍령리 1호 일원이 1570년대 후반부터 1580년대 초, 무갑리 10호 일원이 1580년대 중반부터 1590년대 초 운영된 것으로 본다. 약 10년 단위라는 설명과 맞물려 조선 왕실백자 생산지가 5~10년 안팎의 짧은 주기로 옮겨 간 시기도 확인된다.
1752년부터 130년 이어진 분원리 시기, 1884년 분원 해체로 막 내린 조선 왕실백자 관요 체제
분원이 옮겨 다니던 흐름은 18세기 중반 분원리 시기로 이어졌다. 한강을 앞에 둔 분원리 요지는 1752년부터 1883년 분원이 민영화되기까지 130년간 운영됐고, 조선 후기 최대 규모의 요지로 평가된다. 이후 1884년 분원이 해체되면서 관요를 중심으로 한 조선 왕실백자의 생산 체계는 막을 내렸다. 분원리 일대에는 지금도 사옹원 관리들의 선정비가 남아 있고, 가마터로 오르는 길 주변에서 백자 파편이 발견된다.
왕실 그릇을 둘러싼 통제와 관리도 기록에 남아 있다. 1783년 10월 정조는 경기도에 암행어사를 파견하며 광주 사옹원 분원에서 관원들이 정해진 몫 외에 자기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살피라고 지시했다. 정조는 이 내용을 현판에 새겨 사옹원과 광주 분원에 걸어 두고 지키게 했다. 조선 왕실백자가 단순한 공예품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관리한 물자였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생산 현장에서 벌어지던 민폐를 막으려는 장치이기도 했다.
광주 330여 기 가마터 중 68개소 사적 지정, 조선 왕실백자 유적의 규모와 74개소 조사 성과
광주시에 따르면 시 관내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가마터는 330여 기에 이르고, 이 가운데 68개소는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이들 유적은 조선 왕실백자의 생산과 운영체계를 보여 주는 문화유산으로, 1985년 ‘광주 조선백자 요지’가 사적 제314호로 지정됐다. 2022년 당시 신동헌 광주시장은 광주 분원에서 나온 국보가 20점 남짓, 보물이 38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 실적도 쌓였다. 경기도자박물관은 광주 조선백자 요지를 20여 년간 조사하며 총 74개소의 가마터를 살폈고, 이를 통해 관요의 생성과 이동 경로, 운영 시기를 체계적으로 규명했다. 학술 보고서 20여 권을 발간하고 학술 세미나를 13회 개최한 공로로 2025년 12월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학술·연구 부문 기관 표창으로는 경기도 출자·출연기관 가운데 첫 사례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는 2025년 대한민국 명가명품대상 지역 명품브랜드 부문 대상도 받았다.
경기도자박물관 10년 가마터 발굴 9곳 선정 특별전, 2014년부터 이어진 조선 왕실백자 현장 연구
경기도 가마터 조사의 역사는 이번 세미나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한국도자재단은 2014년 경기도자박물관에서 발굴유물특별전 ‘가마터 발굴, 그 10년의 여정’을 열어 지난 10년간 조사한 경기도 조선시대 가마터 가운데 광주 선동리 2호, 가평 하판리, 안성 화곡리 등 대표 가마터 9곳을 소개했다. 전시는 가마터 발굴과 분원가마의 설치·운영, 지방가마의 집단 요업을 3부로 나눠 다뤘다. 조선 왕실백자의 관요와 지방요를 함께 보는 시각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2024년에는 곤지암리조트에서 학술세미나 ‘조선 왕실에서의 광주백자’가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광주조선백자요지 종합정비계획 수립 사업의 하나였던 이 행사에서는 경기도자박물관 김경중이 태항아리의 제작과 변천을, 국립익산박물관 권소현이 상감백자의 특징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곽희원이 화협옹주 무덤 출토 화장 용기를, 국민대 장지영이 소형 백자 명기를 각각 발표했다. 2024년이 조선 왕실백자의 왕실에서의 쓰임을 다뤘다면 2026년은 지방요와의 관계로 범위를 넓혔다.
상주 상판리와 군포 산본동 가마터, 관요와 지방요의 관계를 보여 주는 두 사례
지방요 연구는 광주 밖에서도 성과를 내 왔다. 상주박물관은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상판리 자기가마 유적을 발굴해 명문자기와 베개, 향로, 화분, 의자 등 높은 품질의 자기를 다량 확인했다. 이 자료를 통해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상품자기소의 위치를 정할 수 있었고, 당시 상주 도자문화의 수준도 밝혔다. 조선 왕실백자의 관요가 설치되기 전 지방이 왕실과 관청용 자기를 어떻게 공급했는지 보여 주는 사례다.
군포 산본동 가마터는 관요 이후의 모습을 보여 준다. 수리산 남동쪽 구릉에 자리한 이 가마터에서는 대접과 접시, 청화백자 조각이 많이 나왔고 ‘복’, ‘제’ 같은 글자가 쓰인 대접도 확인됐다. 국가문화유산포털은 일상 용기뿐 아니라 특수 용도의 그릇도 만들었음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광주 금사리 관요와 가마 구조와 자기류가 비슷해 18세기 전반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본다. 조선 왕실백자를 굽던 관요의 기술이 지방 가마에 닿은 흔적으로 읽힌다.
징더전 45개 유산 지점 세계유산 등재, 조선 왕실백자 요지에 던진 비교 기준
도자 유적을 둘러싼 국제 흐름도 달라졌다. 부산에서 열린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7월 25일 중국이 신청한 ‘징더전 수공예 도자기 산업 유산’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했다. 중국의 61번째 세계유산으로, 도자기를 주제로 한 세계유산의 공백을 메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등재 범위는 후톈 고대 가마 유적과 가오링 도자기 점토 광산 유적 등 5개 구역, 45개 유산 지점으로 10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제조 기술 발전을 담는다.
징더전은 2015년 등재 신청 작업에 착수한 뒤 108건의 보호 사업과 75㎢ 규모의 환경 정비를 마쳤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와 관련해서도 류인권 대표이사는 지난해 12월 경기도자박물관의 대통령 표창 수상 당시 세계유산 등재 기반을 마련하고 디지털 기반 보존 연구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선 왕실백자의 관요와 지방요를 함께 읽는 이번 세미나의 접근도 생산지와 원료, 유적을 묶어 보는 체계적 시각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징더전 등재는 한국과의 교류로도 이어졌다. 중국 장시성과 징더전시 관계자들은 등재 직후 서울 주한중국문화원에서 문화 교류 행사를 열고 징더전 세계유산 사진과 현대 도자기를 소개하는 전시를 선보였다. 장시성 부성장은 한국과 문화·관광·도자 예술 분야 교류를 확대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자 유적의 세계유산화가 지역 간 교류로 번지는 사례로, 조선 왕실백자 연구 역시 국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 45일, 이천·광주·여주에서 열리는 ‘땅이 만든다’
이번 세미나가 연계된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는 9월 18일부터 11월 1일까지 45일간 열리는 13회 행사로, 주제는 ‘땅이 만든다(Earth Makes)’다. 이천 경기도자미술관과 광주 경기도자박물관, 여주 경기생활도자미술관 등에서 열리며, 도자를 인간이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 인간과 재료, 지구 환경이 함께 만든 결과로 새롭게 정의한다. 국내 유일의 도자예술 분야 비엔날레로, 개막식은 지난달 17일 이천 경기도자미술관 야외광장에서 열렸다.
학술 프로그램이 전시와 한 틀에서 운영된다는 점도 눈에 띈다. 흙과 땅을 창작의 주체로 보는 주제는 양질의 백토와 땔감을 찾아 생산지를 옮겼던 조선 왕실백자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경기도자미술관 소장품 300여 점으로 그릇 형태가 시대와 양식을 넘어 이어지고 변화해 온 모습을 살피는 ‘낯선전통’ 전시도 열린다. 현대 도자 전시와 조선 왕실백자 연구가 같은 시기에 서로의 맥락을 보완하는 구조다.
한국도자재단은 서울공예박물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비엔날레 협력 특별전 ‘풍경’을 공동 추진한다. 건축가 장영철의 한옥 파빌리온 ‘필정’과 도예가 최성재의 분청 작업을 결합해 건축과 도자가 어우러지는 전시다. 분청은 이번 세미나 첫 발표가 다룬 15세기 광주 분청사기와 같은 계보에 있는 양식이다. 조선 왕실백자 이전과 이후를 잇는 도자 양식이 현대 작업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같은 비엔날레에서 볼 수 있다.
지방요는 관요의 그림자였나, 광주 관요와 지방요가 나눈 기술의 길
전문가 관점은 관요와 지방요의 역할 분담에서 출발한다.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실장 직함으로 조선 백자를 정리한 김영원 연구자는 광주에 분원이 설치된 뒤 조선 왕실백자를 굽던 광주 관요가 중앙가마로 운영되고 나머지는 지방요가 됐다고 설명했다. 지방요는 지방관청의 통제를 받는 관청용이나 지방민용 자기를 주로 만들었고, 관요를 모방한 주변요는 대부분 중하품 백자를 만들어 고급 관리와 부호, 서민에게 공급했다는 것이다.
가마 현장의 발굴도 이 구도를 뒷받침한다. 김경중 연구자는 발굴된 16~17세기 관요 자료를 토대로 16세기에는 가마 2기 이상이 가까이 놓여 양질백자와 조질백자를 나누어 생산했고, 17세기에는 가마 1기가 두 종류를 필요에 따라 함께 생산한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의 지방요 비교는 관요 안의 생산 방식 변화와 바깥 가마의 대응을 한 평면에서 읽으려는 작업이다.
관요의 생산품도 한 등급으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 광주 우산리 9호 가마 출토 양상에 따르면 최상품 왕실용 갑번백자와 조질 백자가 함께 구워졌다. 김영원 연구자는 이를 광주 분원이 왕실용뿐 아니라 중앙관청용, 또는 사사로운 용도로도 백자를 만들어 공급한 근거로 이해했다. 조선 왕실백자를 만드는 가마가 상품과 조질품을 함께 맡았다는 점은, 관요와 지방요의 차이를 품질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한다.
조선 왕실백자 명문 4점 국보에서 달항아리까지, 광주 관요 유물이 보여 주는 쓰임과 위상
유물에서도 조선 왕실백자를 굽던 광주 관요의 위상은 확인된다. 2024년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순회전에는 조선 전기 광주 관요에서 생산된 왕실용 백자로 바닥에 ‘천’, ‘지’, ‘현’, ‘황’ 글자가 새겨진 국보 ‘백자 천지현황명 발’ 4점이 소개됐다. 이 글자는 숫자나 알파벳처럼 기호로 쓰였으며, 표시가 있는 백자는 대부분 왕실에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전시에는 광주 금사리 가마에서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전반에 주로 제작된 달항아리도 나왔다.
조선 왕실백자 보존·활용, 종합정비계획과 3D 스캔·CT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앞으로의 과제는 보존과 활용을 어떻게 이어 가느냐에 달려 있다. 경기도자박물관은 3D 스캔과 컴퓨터단층촬영 등을 활용한 조선 왕실백자 보존·복원 연구를 추진하고, 국내외 주요 박물관 소장 유물의 제작지를 규명할 수 있는 자료도 확보했다. 발굴로 얻은 가마터 자료와 소장품의 과학 분석이 결합하면 관요와 지방요의 기술 교류를 유물 단위로 검증하는 연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활용 기반도 넓어지고 있다. 경기도자박물관이 광주시와 함께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 ‘너른 고을 광주, 국가유산 생생 체험’은 국가유산청이 주관한 2025년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 우수사업에서 전국 132개 사업 가운데 7개 우수사업에 선정됐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와 삼리구석기유적을 소재로 체험과 탐방, 교육을 묶은 이 사업은 2026년에도 이어진다. 조선 왕실백자 연구 성과가 교육 현장으로 번역되는 경로다.
이번 논의가 이어질 방향은 크게 세 갈래로 가늠된다. 첫째는 광주 조선백자 요지의 발굴조사를 지속해 관요의 이동과 운영 시기를 보완하는 일이다. 둘째는 충청·전북·전남·경상 지방요의 자료를 같은 기준으로 비교해 기술 교류의 경로를 구체화하는 일이다. 셋째는 이 성과를 전시와 교육으로 풀어 도민이 조선 왕실백자의 가치를 체감하게 하는 일이다. 세 갈래 모두 종합토론이 다룬 향후 연구 방향과 맞닿아 있다.
이번 세미나가 경기도에 던지는 메시지는 문화유산을 과거의 유적이 아니라 지금의 공공 자산으로 다루는 방식에 있다. 조선 왕실백자는 광주라는 지역의 땅과 불, 도공의 노동, 중앙정부의 수요가 만난 결과물이다. 이를 광주만의 자랑으로 가두지 않고 충청·전북·전남·경상의 가마와 연결해 읽겠다는 접근은 지역의 문화유산을 국가 요업사 전체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의지로 읽힌다. 지역 자산의 가치를 키우는 방식이다.
과제도 분명하다. 학술세미나의 성과가 논문과 보고서에 머무르면 도민의 자긍심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발굴 현장과 박물관, 비엔날레 전시를 오가며 시민이 조선 왕실백자의 생산 과정을 직접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보존·활용의 선순환이 가능하다. 세계유산 등재와 같은 큰 목표도 주민이 유산을 일상에서 이해하고 지키는 힘에서 출발한다. 경기도가 이번 세미나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조선 왕실백자 관람 가이드
조선 왕실백자를 직접 보려면 광주 경기도자박물관이 출발점이다. 2026 경기도자비엔날레는 11월 1일까지 이천 경기도자미술관, 광주 경기도자박물관, 여주 경기생활도자미술관에서 열리며, 비엔날레 측이 공개한 정가 기준 통합권은 1만1000원, 이천 6000원, 광주·여주 각 4000원이다. 경기도자박물관은 5월부터 11월까지 ‘너른 고을 광주, 국가유산 생생 체험’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운영 시간과 프로그램 신청은 비엔날레 누리집(gcbiennale.org)이나 한국도자재단(031-645-0553)에서 확인하면 된다.
